안중근과 동양평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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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뤼순에서 재판을 받아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 3월 26일 순국했다. 옥중 저술 『동양평화론』은 미완으로 남았다.

언제
1909-10-26
어디서
하얼빈

하얼빈 의거와 체포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독립기념관 자료는 그가 현장에서 러시아 헌병에게 붙잡혔다가 뤼순의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으로 넘겨졌다고 설명합니다.

재판과 순국

재판은 여섯 차례 열렸고 1910년 2월 14일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오전 뤼순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 순국 나이는 자료에 따라 31세 또는 32세로 다르며, 출생은 1879년으로 적습니다.

미완의 『동양평화론』

안중근은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서(序), 전감(前鑑), 현상(現狀), 복선(伏線), 문답의 다섯 편을 계획했으나 서와 전감 일부만 쓰였고, 사형 집행이 예상보다 일찍 이루어져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청·일본이 연대해 서양의 침략에 맞서자는 것이 핵심이며, 옥중 문답 청취서에는 뤼순에 동양평화회의를 두고 공동 화폐·공동 군대를 만들자는 구상이 나옵니다.

참고한 자료

아래 공개 자료를 대조해 작성했습니다. 자료마다 서술이 다른 부분은 ‘자료에 따라 다름’으로 표시했습니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오류제보로 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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