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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와 임시정부

분위기를 표현한 AI 역사 재현 이미지입니다 (사료 아님)

김구는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경무국장 등으로 활동했고,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했으며, 1940년 충칭 시기에 주석이 되었다(선임 시점은 자료에 따라 다름). 광복 후 1945년 11월 23일 귀국했다.

언제
1919
어디서
상하이, 충칭

활동 연표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망명한 김구는 1919년 임시정부에서 경무국장을 맡았고, 이후 내무총장(1923), 국무령(1926)을 지냈습니다.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윤봉길 의거를 이끌었습니다. 임시정부는 1940년 충칭에 자리를 잡았고, 그해 10월 국무위원제가 주석제로 바뀌면서 김구가 주석에 선출되었다고 우리역사넷과 백과사전 임시정부 항목이 적습니다. 반면 다른 자료는 1940년 3월 주석 취임 또는 1944년 4월 주석 선출을 기술하므로, 직책의 성격과 시점은 자료에 따라 다릅니다.

귀국

광복 후 김구는 1945년 11월 23일 미군정 방침에 따라 개인 자격으로 귀국했습니다.

평가와 쟁점

광복 후 김구는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앞장섰고, 1947년 말 이승만과 결별한 뒤 1948년 남북협상에 참여하며 통일정부 수립을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노선에 대한 평가는 연구자에 따라 달라서, 평가를 쓸 때는 근거와 입장을 구분해야 합니다.

참고한 자료

아래 공개 자료를 대조해 작성했습니다. 자료마다 서술이 다른 부분은 ‘자료에 따라 다름’으로 표시했습니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오류제보로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