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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 북로군정서를 이끈 청산리의 지휘관

분위기를 표현한 AI 역사 재현 이미지입니다 (사료 아님)

김좌진의 초상 사진
김좌진
사진: Courtesy of the National Archives of Korea (original author unknown) · Original date unknown but before 1930; photo scanned on Janu · Public domain · 출처(Wikimedia Commons)

김좌진(1889~1930)은 충남 홍성 출신으로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1920년 청산리 전투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입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언제
1889

한눈에 보기

김좌진은 1889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1930년 만주에서 숨진 독립운동가입니다. 호는 백야입니다. 국내에서는 학교 설립과 계몽 활동, 대한광복회 활동을 했고, 만주에서는 북로군정서를 이끌며 독립군 간부 양성과 무장투쟁에 힘썼습니다.

생애와 활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김좌진은 1905년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고 1910년대에는 신민회 등에 관여했으며 호명학교를 운영했습니다. 1915년 대한광복회에 가입했고 1917년 체포되었습니다. 1919년 만주로 건너가 대한정의단과 대한군정부(이후 군정서)의 군사 책임을 맡았고, 이 조직은 북로군정서로 불렸습니다. 공훈전자사료관은 사관연성소를 세워 독립군 간부를 길렀다고 기록합니다. 1920년 10월 청산리 일대에서 북로군정서가 일본군과 교전했습니다. 전투 일정은 자료에 따라 10월 20~26일 또는 21일 백운평 전투 시작으로 서술되며 일본군 피해 수치도 자료마다 다릅니다. 이후 1925년 신민부 창립에 참여했고 1928~1929년 한족총연합회 결성에 관여했습니다. 1930년 1월 산시 정미소에서 공산 계열 인물 박상실의 총격으로 숨졌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적습니다. 공훈전자사료관 공적정보는 저격범을 박상업으로도 적어 이름이 엇갈립니다.

활동 지역

충남 홍성(출신지와 계몽 활동), 서울(무관학교), 북간도(북로군정서와 청산리), 러시아 연해주(1921년 한때 체류), 북만주 산시 일대(신민부·한족총연합회 활동과 순국).

기록이 말해 주는 것

공훈전자사료관은 김좌진에게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서훈되었다고 기록하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도 같은 내용을 적습니다. 공훈록은 1929년 음력 12월 25일 피살로 적고 있어, 양력으로는 1930년 1월 무렵이라는 서술과 연도 표기가 달라 보입니다. 청산리 전투의 지휘를 두고 다른 항목은 여러 지휘관의 협력으로 설명하므로, 개인의 공만으로 단정하기보다 연합 전투라는 맥락에서 읽는 것이 좋습니다.

관련 사료와 기록

생각해 볼 질문

1. 큰 전투의 승리를 한 지휘관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방식은 어떤 점을 보여주고 또 가릴까요? 2. 독립운동 안에서 이념이 달랐던 세력 사이의 갈등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참고한 자료

아래 공개 자료를 대조해 작성했습니다. 자료마다 서술이 다른 부분은 ‘자료에 따라 다름’으로 표시했습니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오류제보로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