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선언서는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발표되어, 조선의 독립과 조선인의 자주성을 선언하고 비폭력·평화의 원칙을 밝힌 글입니다.
- 언제
- 1919-03-01
왜 중요할까요?
3·1독립선언서는 3·1운동의 출발점이 된 글입니다. 기미독립선언서라고도 부릅니다. 무엇을 주장했는지 살펴보면, 이 운동이 어떤 가치를 앞세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누가 선언서를 만들었는지,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그리고 끝에 덧붙은 공약 3장이 무엇인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어려운 한자어가 많은 글이지만 핵심만 알면 어렵지 않습니다.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민족 지도자들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발표되자 독립운동의 기회가 왔다고 보았습니다. 천도교의 최린이 추천하여 최남선이 선언서 작성을 맡았습니다. 처음에는 청원서만 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최린이 청원서만으로는 민족자결의 뜻이 살지 않는다고 주장해 선언서도 함께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천도교 15인, 기독교 16인, 불교 2인입니다. 한편 김윤식은 청원서에는 찬성했지만 선언서 서명은 거부했고, 유림은 교섭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말했을까요?
선언서는 먼저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인이 스스로 주인인 국민임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 근거로 오랜 역사, 민족 전체의 뜻, 세계 질서가 바뀌는 흐름을 들었습니다. 독립의 목적은 남을 무너뜨리는 데 있지 않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데 있다고 했으며, 지난 원한으로 상대를 배척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또 조선의 독립이 동양과 세계의 평화로 이어진다고 보았습니다. 끝에 덧붙은 공약 3장은 행동의 원칙입니다. 정의와 인도를 위한 행동이므로 배타적 감정에 치우치지 말 것, 끝까지 민족의 정당한 뜻을 당당히 밝힐 것, 모든 행동에서 질서를 존중할 것을 담았습니다. 공약 3장은 한용운이 추가했다는 설이 있으나, 자료에 따라 설명이 다릅니다.
오늘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선언서는 비폭력·평화의 방법으로 자주 독립을 이루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했습니다. 국내외 독립선언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글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또한 서로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3·1운동이 여러 계층이 함께한 운동으로 이어지는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언서를 읽을 때는 문장 하나하나보다, 어떤 가치를 앞세웠는지에 주목해 보세요.
사진 자료

사진: User:Pugnari (페이지: 'Pugnari assumed') · 2006-11-19 촬영 · CC BY-SA 3.0 · 출처(Wikimedia Commons)

사진: User:Pugnari (페이지: 'Pugnari assumed') · 2006-11-19 촬영 · CC BY-SA 3.0 · 출처(Wikimedia Commons)
생각해 볼 질문
1. 독립선언서가 폭력 대신 질서와 평화를 강조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2. 서로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이 한 선언서에 함께 서명한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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