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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 —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

분위기를 표현한 AI 역사 재현 이미지입니다 (사료 아님)

김상옥의 초상 사진
김상옥
사진: Unknown author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2017-12-11 (Commons 기재일, 촬영연도 아님) · Public domain · 출처(Wikimedia Commons)

서울 출신 의열단원으로 1923년 1월 종로경찰서 투탄 사건과 이후 일본 경찰과의 교전으로 기록된 독립운동가입니다.

언제
1889

한눈에 보기

김상옥(金相玉)은 공훈전자사료관에 1889년 1월 5일 태어나 1923년 1월 22일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울 출신이며, 운동계열은 의열투쟁입니다. 1923년 1월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사건과 그 뒤 경찰과의 교전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생애와 활동

공적개요에 따르면 젊은 시절 동흥야학교를 세워 가난한 집 아이들을 가르쳤고, 철물점을 운영하며 일본 상품을 배척하려는 뜻으로 말총모자를 만들었습니다. 공훈록은 금주·단연운동도 전개했다고 적습니다. 1919년 4월 혁신단을 조직해 혁신공보를 발행했고, 같은 해 12월 암살단을 조직해 고관 암살을 계획했다고 합니다. 1920년 8월 미국 의원단 방한을 계기로 한 거사 계획은 동지들이 붙잡혀 실패했고, 그해 10월 상해로 건너가 김구·이시영 등과 계획을 논의했습니다. 국내 재입국 시점은 자료마다 다릅니다. 공적개요는 1921년 12월 귀국했다고 적고, 공훈록은 1922년 겨울 의열단원으로 무기를 지니고 서울에 들어왔다고 적습니다.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고, 1월 22일 효제동에서 경찰과 교전한 끝에 숨졌다고 기록됩니다. 공적개요는 마지막 탄환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적습니다. 투탄 직후 상황은 두 서술이 달라, 공적개요는 같은 날 오후 포위와 삼판동 사건을, 공훈록은 12일 밤 투탄과 10여 일의 은신을 말합니다.

활동 지역

확인되는 지역은 서울(종로, 삼판동·남산, 왕십리, 효제동)과 중국 상해입니다.

기록이 말해 주는 것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고, 1992년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기록이 있습니다. 묘소는 국립서울현충원이며, 관련 현충시설로 밀양 의열기념관과 서울 종로의 동상 등이 안내됩니다. 공훈록에는 순국 후 1924년 상해 임시정부 외교부장 조소앙이 전을 지어 간행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두 기록이 일부 사실에서 다르게 서술되므로, 날짜와 경위는 기록별로 구분해 읽어야 합니다. 의열투쟁의 수단을 둘러싼 후대의 평가는 이 페이지가 다루는 범위가 아닙니다.

관련 사료와 기록

  • 독립유공자 공훈록 김상옥 (식별번호 669) — 공훈전자사료관의 김상옥 공적정보 페이지로, 종로경찰서 투탄 사건과 1962년 서훈 내용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생각해 볼 질문

1. 한 기록 안에서도 사건의 시간 순서가 달리 서술될 때, 어떤 자료를 더 대조해 보면 좋을까요? 2. 교육·실업 활동에서 무력 투쟁으로 나아가는 경로를 기록은 어떻게 보여 주고 있을까요?

참고한 자료

아래 공개 자료를 대조해 작성했습니다. 자료마다 서술이 다른 부분은 ‘자료에 따라 다름’으로 표시했습니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오류제보로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