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거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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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은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의 일본군 전승기념·천장절 행사에서 폭탄을 던졌고, 이후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 등지로 옮겼으며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얻게 되었다고 평가된다.

언제
1932-04-29
어디서
상하이 훙커우공원

훙커우공원 의거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현 루쉰공원)에서는 일본군의 상하이 점령 전승기념 및 천장절 행사가 열렸습니다. 한인애국단 소속 윤봉길이 단상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가 크게 다쳐 이후 숨졌고, 거류민단장 가와바타도 사망했으며, 우에다 겐키치·노무라 기치사부로·시게미쓰 마모루 등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시라카와의 사망일은 자료에 따라 5월 24일과 26일로 다릅니다.

윤봉길의 최후

윤봉길은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1932년 5월 25일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일본으로 이송되어 가나자와에서 총살로 순국했습니다. 순국일은 12월 18일 또는 19일로 자료마다 다릅니다.

임시정부의 이동과 중국의 지원

일제가 배후 수색에 나서 안창호 등이 체포되자 임시정부 요인들은 1932년 5월 상하이를 떠났습니다. 조소앙·김철 등은 5월 10일 항저우에 도착했고, 김구는 자싱 등지에 피신했습니다. 임시정부는 이후 1940년 충칭에 정착하기까지 약 8년간 이동했습니다. 의거 이후 중국 국민당 정부가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이 의거로 임시정부의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고 평가됩니다.

참고한 자료

아래 공개 자료를 대조해 작성했습니다. 자료마다 서술이 다른 부분은 ‘자료에 따라 다름’으로 표시했습니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오류제보로 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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