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Unknown author (credit: opentory.com) · no later than 1938 · Public domain · 출처(Wikimedia Commons)
박은식(1859~1925)은 황해도 황주 출신으로 언론·교육 활동과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 저술, 임시정부 활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62년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 언제
- 1859
한눈에 보기
박은식은 1859년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나 1925년 11월 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문 주필과 교육 활동으로 시작해 중국 망명 후 역사서를 펴냈고, 임시정부에서도 활동했습니다.
생애와 활동
1898년 『황성신문』 주필, 1904년 『대한매일신보』 주필을 맡았고, 1906년 서우학회를 창립했으며 1907년 신민회에 참여했습니다. 1908년에는 서북협성학교 설립 활동이, 1909년에는 대동교 창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913년에는 박달학원 설립과 『향강』 주간 활동이 나옵니다. 1912년 중국에서 동제사를 창립했고, 1915년 신한혁명당에 관여하며 『한국통사』를 간행했습니다. 1917년에는 대동단결선언에 서명했습니다. 1919년 임시정부에 참여했고, 1920년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펴냈습니다. 1924년 독립신문사 사장을 맡았으며, 1925년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인명사전은 같은 해 3월 말 헌법개정안을 제출한 뒤 대통령직을 사임한 것으로 적습니다.
활동 지역
확인된 지역은 황해도, 서울, 만주 환인현, 상하이, 블라디보스토크 등입니다. 사망 장소는 열어 본 인명사전 페이지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기록이 말해 주는 것
공훈전자사료관과 독립운동인명사전은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를 기록합니다. 공훈록 요약은 애국계몽운동, 동제사 결성, 신한혁명당 참여, 『한국통사』 간행, 임시정부 대통령 선출을 공적으로 듭니다. 저술의 사료적 가치에 대한 평가는 연구자의 견해이며, 책의 서술 범위와 편찬 목적을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한편 인명사전에 따르면 1924년 6월 국무총리 겸 대통령 대리로 추대되었고, 1925년 3월 24일 제2대 대통령 취임이 선언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해 3월 30일 대통령제를 내각책임제로 바꾸는 헌법개정안을 낸 뒤 사임했다는 서술도 함께 있어, 직책 표기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 사료와 기록
- 이달의 독립운동가 박은식 (식별번호 관리번호 2317) — 공훈전자사료관이 박은식의 1962년 대통령장 서훈과 애국계몽운동·임시정부 공적을 요약한 인물 페이지입니다.
- 독립운동인명사전 박은식 — 독립기념관 인명사전이 박은식의 생몰년, 연도별 활동과 임시정부 직책 변동을 정리한 항목입니다.
생각해 볼 질문
1. 나라를 잃은 시기에 역사를 쓰는 일은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요? 2. 언론, 교육, 저술, 정부 활동 가운데 그의 역할은 어떻게 이어졌을까요?
참고한 자료
아래 공개 자료를 대조해 작성했습니다. 자료마다 서술이 다른 부분은 ‘자료에 따라 다름’으로 표시했습니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오류제보로 알려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