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Anonymous (extracted from File:Hague Secret Emissary Affair – Yi Tjoune, Sangsul Yi, Yi Wi-jong.png) · before 1908 · Public domain (PD-anon-expired / PD-scan) · 출처(Wikimedia Commons)
이준은 독립협회와 국민교육회 등에서 활동한 계몽운동가로, 1907년 헤이그 특사의 부사로 파견되었다가 같은 해 7월 헤이그에서 숨졌습니다. 1962년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 언제
- 1859
한눈에 보기
이준(李儁)은 1859년 1월 21일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나 1907년 7월 14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검사로 관직에 있다가 독립협회와 여러 계몽 단체에서 활동했고, 1907년 고종이 비밀리에 보낸 헤이그 특사 세 명 가운데 부사로 파견되었습니다.
생애와 활동
1895년 법관양성소를 졸업해 검사로 일했고, 1898년 독립협회에 가입해 만민공동회에서 연설했습니다. 1902년에는 비밀결사 개혁당에 가담했습니다. 1904년 일본의 황무지개척권 요구에 반대하는 대한보안회에서 총무를 맡았고, 이후 공진회를 조직해 활동하다 6개월 유배형을 받았다고 공훈록에 적혀 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에는 상동교회 동지들과 함께 조약 폐기를 요구하는 상소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06년 국민교육회, 한북흥학회, 헌정연구회 등을 조직하거나 이끌었습니다. 1907년 4월 21일 서울을 떠나 블라디보스토크와 페테르부르크를 거쳐 6월 25일경 헤이그에 도착했으나 회의 참석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7월 14일 헤이그에서 숨졌습니다.
활동 지역
함경남도 북청(출생), 서울(관직·상소운동),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페테르부르크(특사 이동 경로), 네덜란드 헤이그(특사 활동과 순국)가 확인됩니다. 묘소는 서울 강북구 수유리 국가관리묘역(합동묘역)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기록이 말해 주는 것
공훈전자사료관에는 운동계열 계몽운동,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로 기재되어 있고, 공훈록은 통감부가 궐석재판에서 종신징역을 선고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사망 경위는 자료에 따라 다릅니다. 공훈록은 분개하여 통탄하다 순국했다고 쓰고, 독립운동인명사전은 음식을 끊었다는 서술과 함께 당시 네덜란드 신문의 수술 후유증 보도, 국내 대한매일신보의 자결 보도를 나란히 소개합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이 자료들만으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관련 사료와 기록
- 이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적개요·공훈록) (식별번호 8914) — 공훈전자사료관 상세페이지가 이준의 생몰년, 대한민국장(1962), 개혁당·상소운동·헤이그 특사 활동을 공훈록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 이준 – 독립운동인명사전 — 독립운동인명사전 상세페이지가 이준의 주요 활동과 헤이그특사사건, 순국을 둘러싼 당대 보도의 차이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사진 자료

사진: Unknown author · 1907-07-09 · Public domain (PD US expired) · 출처(Wikimedia Commons)
생각해 볼 질문
1.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한 특사 활동은 어떤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2. 사망 경위에 대해 서로 다른 기록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역사적 사실을 판단해야 할까요?
참고한 자료
아래 공개 자료를 대조해 작성했습니다. 자료마다 서술이 다른 부분은 ‘자료에 따라 다름’으로 표시했습니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오류제보로 알려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