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은 1945년 10월 16일,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은 그해 11월 말 개인 자격으로 귀국했습니다.
- 언제
- 1945-10-16
먼 나라에서 기다린 광복
독립운동가들은 광복 뒤에도 곧바로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중국 충칭의 임시정부,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승만 모두 이동 수단과 허가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떤 자격으로 돌아왔는지는 해방 후 정치의 출발점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이 글에서는 가장 먼저 돌아온 이승만과 뒤이어 돌아온 임시정부 요인들의 귀국 과정을 날짜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가장 먼저 돌아온 이승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이승만은 1945년 10월 16일 오후 5시 김포비행장에 도착했습니다. 우리역사넷은 귀국 전 도쿄에서 맥아더와 하지를 만났다고 설명합니다. 이튿날인 17일 군정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임시정부 대표가 아니라 평민으로 돌아왔다는 취지로 밝혔다고 당시 신문(매일신보, 자유신문)이 전합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는 이 귀국을 33년 만에 해방된 고국 땅을 밟은 일로 설명하며, 기자회견에서 그가 영어로 먼저 말한 뒤 직접 우리말로 옮겼다고 적고 있습니다. 하지 중장도 회견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개인 자격으로 돌아온 임시정부
미군정은 임시정부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역사넷 사료에 따르면 김구는 개인 자격임을 알고 미군정에 협조하겠다는 서약서를 낸 뒤 귀국을 승인받았습니다. 제1진 김구·김규식·이시영 등은 11월 말에 돌아왔습니다. 사료는 조선 민중이 임시정부 요인들을 크게 환영했다고 전하고, 국가기록원 계열 자료에는 12월 12일 서울 대각사에서 환국을 기념하는 봉영회가 열린 기록도 있습니다. 날짜는 자료에 따라 다릅니다. 사료 자료는 11월 24일 환국으로, 국가기록원 계열 전시 자료는 11월 23일 충칭 출발, 27일 서울 도착으로 적고 있습니다.
돌아온 뒤의 과제
우리역사넷은 돌아온 지도자들이 정당과 단체를 만들었지만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다고 설명합니다. 이승만이 먼저 귀국했고 임시정부 요인들이 한 달쯤 뒤 합류했다는 순서는, 이후 해방 정국의 전개를 볼 때 기억해 둘 만합니다. 이들은 정부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돌아왔기에 곧바로 나라의 정부를 이끌 수는 없었습니다. 귀국 장면 하나에도 광복 직후의 복잡한 국제 사정이 담겨 있는 셈입니다.
사진 자료

사진: 원전 불상(原典不詳) · 1945 · Public domain (PD-Korea-1910-1945 등, 페이지 명시) · 출처(Wikimedia Commons)

사진: 독립기념관 · 1945-09-30 · Public domain (PD-Korea-1910-1945 등, 페이지 명시) · 출처(Wikimedia Commons)
생각해 볼 질문
1. 미군정이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개인 자격 귀국을 요구한 일은 이후 정치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2. 오랜 해외 활동 끝에 귀국한 지도자들에게 국민이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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