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직후 남한에서 일어난 인구 이동, 통화 팽창과 물가 상승, 식량 사정을 국사편찬위원회와 통계청·조선은행 자료의 수치로 살펴봅니다.
- 언제
- 1945-08-15
1945년 8월 15일의 광복은 해방의 기쁨이었지만, 동시에 수백만 명이 이동하고 물가와 식량 사정이 크게 흔들린 시기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이 글은 통계청, 조선은행 등 당시와 후대의 집계를 우리역사넷 등에서 확인해 정리한 것입니다. 숫자는 집계 주체와 범위에 따라 다르므로,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상황의 규모를 가늠하는 단서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돌아온 사람들: 귀환·월남 규모 (집계에 따라 다름)
해방 후 남한에는 일본, 중국·만주, 북한 등지에서 많은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같은 현상을 두고도 집계 기관과 기간이 달라 수치가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 구분 | 항목 | 인원(명) | 집계 주체·기간 |
|---|---|---|---|
| 해외동포 입국자 | 일본 입국자 | 1,117,819 | 통계청, 1945.8.15~1948.12.31 |
| 해외동포 입국자 | 중국 등 기타 입국자 | 102,208 | 통계청, 1945.8.15~1948.12.31 |
| 월남자 | 북한 월남자 | 648,784 | 통계청, 1945.8.15~1948.12.31 |
| 월남자 | 북한 경유 중국·만주 월남자 | 320,231 | 통계청, 1945.8.15~1948.12.31 |
| 귀환자(거주지별) | 일본에서 귀환 | 1,110,972 | 조선은행, 1945.10~1947.12 |
| 귀환자(거주지별) | 북한에서 귀환 | 859,930 | 조선은행, 1945.10~1947.12 |
| 귀환자(거주지별) | 만주에서 귀환 | 304,391 | 조선은행, 1945.10~1947.12 |
| 귀환자(합계) | 전체 | 2,380,820 | 조선은행, 1945.10~1947.12 |
| 재일 한인 귀환(참고) | 일본 거주 한인 귀환자 | 945,848 | 연합국군 총사령부(SCAP) 공식 통계, 1945.9~1950.5 (자료에 따라 다름) |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신편 한국사』 52권(우리역사넷)이 인용한 통계청·조선은행 표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재일조선인 귀환’ 항목에서 확인했습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사람만 보아도 통계청 집계(1,117,819명), 조선은행 집계(1,110,972명), SCAP 공식 통계(945,848명)가 서로 다르므로 ‘자료에 따라 다름’으로 읽어야 합니다. 대백과사전은 사적으로 배편을 마련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총 150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돈과 물가: 통화 발행고와 도매물가 상승률
광복 직후에는 통화가 크게 늘고 물자 공급은 줄어, 물가가 빠르게 올랐다고 설명됩니다. 통화량을 보여 주는 수치가 자료마다 조금씩 달라 둘 다 적었습니다.
| 항목 | 시점 | 수치 | 출처 |
|---|---|---|---|
| 조선은행권 발행액 | 1945.8.14 | 48.43억 원 | 배영목(2002), 우리역사넷 인용 |
| 조선은행권 발행액 | 1945.8 말 | 79.9억 원 | 배영목(2002), 우리역사넷 인용 |
| 조선은행권 발행액 | 1945 말 | 87.6억 원 | 배영목(2002), 우리역사넷 인용 |
| 조선은행권 발행액 | 1945.8.15 | 49억 7,500만 원 (위와 시점·기준이 달라 수치가 다름) | 국사편찬위원회 『신편 한국사』(우리역사넷) |
| 서울 도매물가 상승률 | 1945 | 576% (우리역사넷) / 12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2,364% (대백과) | 자료에 따라 다름 |
| 서울 도매물가 상승률 | 1946 | 378% (우리역사넷) / 370% (대백과) | 자료에 따라 다름 |
| 서울 도매물가 상승률 | 1947 | 198% (우리역사넷) / 81.8% (대백과) | 자료에 따라 다름 |
| 서울 도매물가 상승률 | 1948 | 62.9% (두 자료 동일) | 우리역사넷, 대백과 |
| 서울 도매물가 상승률 | 1949 | 36.8% (두 자료 동일) | 우리역사넷, 대백과 |
출처: 우리역사넷 ‘광복 후 통화 남발과 물가 폭등’, 『신편 한국사』 52권 ‘경제적 혼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플레이션’ 항목에서 확인했습니다.
도매물가 상승률은 1947년 수치가 두 자료에서 198%와 81.8%로 크게 다릅니다. 기준 시점(연평균인지 연말 대비인지)과 지수 종류에 따른 차이일 수 있으나, 이 글에서는 원인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늘고 쌀은 줄고: 남한 인구와 미곡 생산
귀환과 월남으로 남한의 인구는 늘었고, 같은 시기 쌀 생산은 줄었다고 기록됩니다. 두 수치를 함께 놓으면 식량 사정이 어려웠던 배경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항목 | 시점 | 수치 | 비고 |
|---|---|---|---|
| 남한 조선인 인구 | 1942.12 | 16,876,745명 | 조선은행 조사부(1948) |
| 남한 조선인 인구 | 1944.5 | 16,565,317명 | 조선은행 조사부(1948) |
| 남한 조선인 인구 | 1946.8 | 19,369,270명 | 조선은행 조사부(1948) |
| 남한 거주 일본인 | 1942.12 | 490,204명 | 조선은행 조사부(1948) |
| 남한 거주 일본인 | 1944.5 | 462,507명 | 조선은행 조사부(1948). 남북한 합계 712,583명(통계청 인용)과는 범위가 다름 |
| 미곡 생산량 | 1942~1944 평균 | 1,372만 석 | 출처 미명시 |
| 미곡 생산량 | 1945 | 1,284만 석 | 출처 미명시 |
| 미곡 생산량 | 1946 | 1,205만 석 | 출처 미명시 |
출처: 우리역사넷(국사편찬위원회 『신편 한국사』 52권) ‘해방 직후의 식량 사정과 미곡 자유시장정책’ 및 ‘사회적 혼란’ 항목에서 확인했습니다.
이 자료는 남한 인구 증가가 대략 230만 명, 13% 이상이라고 서술합니다. 다만 미곡 생산량은 출처가 본문에 따로 밝혀져 있지 않아 수치의 정확성은 원자료로 재확인이 필요합니다.
숫자를 읽을 때 유의할 점
이 글의 수치는 통계청, 조선은행, SCAP, 연구자 저작을 우리역사넷과 대백과사전이 옮겨 실은 것으로, 집계 기관과 기간, 지역 범위(남한, 남북한)가 서로 다릅니다. 같은 항목도 자료마다 값이 다르며, 사적으로 이동한 사람은 공식 집계에서 빠졌을 수 있습니다. 해방 직후 행정과 통계 체계가 혼란스러웠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고, 한 자료에는 인쇄상 오기로 보이는 값도 있어 이 글에서는 제외했습니다. 서로 다른 표의 수치를 합하거나 비교해 새 결론을 내리는 것은 피하셔야 합니다.
생각해 볼 질문
귀환·월남 인원에 대한 집계가 기관마다 다른 까닭은 무엇이며, 공식 집계에서 빠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인구 증가, 통화 팽창, 쌀 생산 감소가 겹친 상황이 당시 사람들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생각해 봅시다.
참고한 자료
아래 공개 자료를 대조해 작성했습니다. 자료마다 서술이 다른 부분은 ‘자료에 따라 다름’으로 표시했습니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오류제보로 알려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