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근대

  • 의병과 독립군의 차이

    의병

    을미의병은 1895년 을미사변(8월 20일)과 11월 단발령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으며, 지방의 유력 유생이 지휘부를 이루고 병사는 평민이 많았다. 1905년 을사늑약 전후의 을사의병에서는 최익현 같은 유림 지도자와 신돌석 같은 평민 의병장이 활약했고, 농민이 전투 병력의 주축을 이루었다. 1907년 7월 고종 강제 퇴위와 8월 군대 해산 뒤에는 해산 군인이 합류하며 전투력이 높아졌고(정미의병), 1908년에는 13도창의군이 서울 진공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대백과는 1908년을 의병 활동의 절정으로 보며 연간 약 2,000회, 참가 약 3만 6천여 명이라고 쓴다.

    독립군

    의병은 일본군의 공격으로 국내 기반을 잃어 가며 간도·연해주로 활동 무대를 넓혔다. 우리역사넷은 1908년부터 연해주 의병이 독립군 형성의 선구가 되었고, 홍범도를 비롯한 함경도 의병이 그대로 독립군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한다. 대백과는 1909년 남한대토벌과 1910년 병합 이후 많은 의병이 국경을 넘어 중국에서 무장투쟁을 이었다고 쓴다. 또 신민회 계열 인사들이 만주로 망명해 독립군기지를 개척했다.

    비교

    의병은 유생·농민·해산 군인이 지역에서 일어난 국내 항쟁이었다. 독립군은 병합 이후 국외 기지를 바탕으로 활동했고, 의병 노선을 계승한 독립전쟁이 독립운동 방략의 주류가 되었다고 우리역사넷은 평가한다. 일부 의병이 국외로 이동해 독립군이 되었으므로 두 흐름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

    참고한 자료

    아래 공개 자료를 대조해 작성했습니다. 자료마다 서술이 다른 부분은 ‘자료에 따라 다름’으로 표시했습니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오류제보로 알려 주세요.

  • 안중근과 동양평화론

    하얼빈 의거와 체포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독립기념관 자료는 그가 현장에서 러시아 헌병에게 붙잡혔다가 뤼순의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으로 넘겨졌다고 설명합니다.

    재판과 순국

    재판은 여섯 차례 열렸고 1910년 2월 14일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오전 뤼순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 순국 나이는 자료에 따라 31세 또는 32세로 다르며, 출생은 1879년으로 적습니다.

    미완의 『동양평화론』

    안중근은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서(序), 전감(前鑑), 현상(現狀), 복선(伏線), 문답의 다섯 편을 계획했으나 서와 전감 일부만 쓰였고, 사형 집행이 예상보다 일찍 이루어져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청·일본이 연대해 서양의 침략에 맞서자는 것이 핵심이며, 옥중 문답 청취서에는 뤼순에 동양평화회의를 두고 공동 화폐·공동 군대를 만들자는 구상이 나옵니다.

    참고한 자료

    아래 공개 자료를 대조해 작성했습니다. 자료마다 서술이 다른 부분은 ‘자료에 따라 다름’으로 표시했습니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오류제보로 알려 주세요.

  • 항일역사관

    항일역사관은 개항기부터 1945년 광복까지, 국권 침탈에 맞선 독립운동의 역사를 사료와 함께 읽는 한국역사박물관의 첫 상설전시입니다.

    8개 전시관

    1관 개항과 국권 침탈 · 2관 의병과 계몽운동 · 3관 3·1운동 · 4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 5관 독립전쟁과 의열투쟁 · 6관 일상의 저항 · 7관 식민지 지배와 피해 · 8관 광복

    관람 안내

    한국역사박물관은 민간이 운영하는 온라인 역사교육 프로젝트입니다. 사건·인물·사료 글은 사료 검수를 마치는 대로 차례로 공개합니다.

  • 1관 개항과 국권 침탈

    이 전시관은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시작된 개항, 대한제국의 수립, 1905년 을사늑약과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 1910년 강제병합까지 국권이 침탈되는 과정을 다룹니다. 조약 원문과 당시 신문, 관보를 함께 읽으며 각 사건이 어떤 근거로 기록되어 있는지 확인합니다.

    이 전시관의 사건·사료 글은 검수를 마치는 대로 공개합니다.

  • 2관 의병과 계몽운동

    무력으로 맞선 의병과 교육·언론·경제 운동으로 힘을 기르려 한 계몽운동을 함께 다룹니다. 두 흐름이 서로 어떻게 달랐고 어디서 만났는지 사료로 살펴봅니다.

    이 전시관의 사건·사료 글은 검수를 마치는 대로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