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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리아 — 2·8 독립선언과 대한민국애국부인회

분위기를 표현한 AI 역사 재현 이미지입니다 (사료 아님)

김마리아의 초상 사진
김마리아
사진: East Asian Library,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credit: picryl.com mirror) · 1919-01-01 · CC BY-SA 4.0 · 출처(Wikimedia Commons)

김마리아는 1892년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난 교육자로, 일본 유학 중 2·8독립선언에 참여하고 1919년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을 맡았으며, 재판 뒤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의정원 의원이 되었습니다.

언제
1892

한눈에 보기

김마리아(金瑪利亞)는 1892년 6월 18일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나 1944년 3월 13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도쿄 유학생 단체 회장으로 2·8독립선언에 관여했고, 귀국 후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으로 독립운동 자금 모금을 이끌다 체포되어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생애와 활동

1910~1917년: 정신여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일한 뒤 일본 유학을 거쳐, 1917년 동경여자유학생친목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고 인명사전은 적습니다. 1919년: 2월 8일 도쿄 2·8독립선언식에 참가한 뒤 선언서를 지니고 귀국했습니다. 3월 6일 3·1운동 관련 혐의로 체포되었고, 인명사전에 따르면 7월 가석방, 8월 면소 결정을 받았습니다. 9월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에 선임되었으나 11월 조직이 발각되어 다시 체포되었습니다. 1920~1921년: 1920년 5월 병보석, 6월 대구지방법원과 12월 대구복심법원에서 모두 징역 3년이 선고되었고, 1921년 6월 상고가 기각되었습니다. 같은 해 7월 상하이로 망명했습니다. 1922~1944년: 1922년 2월 임시의정원 황해도 의원에 선출되었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공부해 1929년 콜롬비아대학 사범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32년 귀국해 원산에서 신학을 가르쳤으며 1944년 평양에서 사망했습니다.

활동 지역

황해도 장연(출생지), 서울(정신여학교, 세브란스병원), 일본 도쿄, 대구(수감·재판), 중국 상하이와 난징, 미국(샌프란시스코, 미주리, 시카고, 뉴욕), 함경남도 원산, 평양입니다.

기록이 말해 주는 것

공훈전자사료관에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서훈이 기재되어 있고, 공적 개요는 애국부인회 회장, 임시정부 자금 송금으로 인한 재판, 상하이 망명과 임시정부 황해도 대의원 활동을 듭니다. 자료마다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미국행 시기를 공훈록은 1923년 6월 21일 도미로 적고, 인명사전은 6월 중국 여권으로 출발해 7월 12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고 적습니다. 석방 경위도 공훈록은 8월 면소 석방으로, 인명사전은 7월 가석방 뒤 8월 면소로 적습니다.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공훈전자사료관에는 동명이인 김마리아(배화여학교 재학 중 1920년 만세운동으로 2018년 대통령표창, 관리번호 956408)도 따로 등재되어 있어 이 글의 인물과 구별해야 합니다.

관련 사료와 기록

생각해 볼 질문

1. 2·8독립선언, 3·1운동, 애국부인회로 이어진 활동은 서로 어떻게 연결될까요? 2. 같은 이름의 인물을 기록에서 구별하려면 어떤 정보를 확인해야 할까요?

참고한 자료

아래 공개 자료를 대조해 작성했습니다. 자료마다 서술이 다른 부분은 ‘자료에 따라 다름’으로 표시했습니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오류제보로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