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Unknown author (credit: opentory.com) · no later than 1938 (as written on page) · Public domain (categories PD Old / CC-PD-Mark) · 출처(Wikimedia Commons)
이동휘(1873~1935)는 함남 단천 출신으로, 한말 계몽운동과 해외 독립운동, 임시정부 국무총리직, 한인사회당·고려공산당 활동을 이어간 인물입니다.
- 언제
- 1873
한눈에 보기
이동휘(1873~1935)는 함경남도 단천 출신으로, 한말에 학교 설립과 계몽운동에 나섰고 이후 북간도와 연해주, 상하이를 오가며 활동한 독립운동가입니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에 취임했고, 한인사회당과 고려공산당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생애와 활동
1905년 보창학교를 세웠고, 1908년경 서북학회 설립과 신민회 참여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군대 해산 이후 강화도 일대의 무장 움직임과 관련해 체포·유배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시기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1910년대에는 북간도에서 간민회 활동을 이끌었고, 연해주로 옮겨 권업회에 참여했으며 1914년 대한광복군정부 조직에 관여했습니다. 1918년 한인사회당을 창당해 위원장이 되었다고 기록됩니다. 1919년 임시정부 국무총리에 취임했고, 1921년 1월 임시정부를 떠났으며 같은 해 고려공산당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1930년대 연해주에서 국제혁명가후원회(모플) 활동을 했고, 1935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별세했습니다.
활동 지역
국내(강화도, 서울, 함경도 일대), 북간도(룽징, 왕칭현 나자구 등),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등), 중국(상하이, 광둥)에서 활동했다고 기록됩니다.
기록이 말해 주는 것
공훈전자사료관은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를 기재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국무총리 재임 중 소련에서 받은 자금 일부를 고려공산당 조직에 쓴 일이 알려져 사임했다고 서술하며, 공산주의 활동은 반일 민족독립이 우선이었다는 해석을 함께 제시합니다. 이 해석은 해당 사전의 입장이고, 공산주의 운동과 임시정부의 갈등을 어떻게 볼지는 평가가 나뉠 수 있는 쟁점입니다. 출생(1872년 또는 1873년)과 한인사회당 창당 시기(1915년경 또는 1918년)도 자료에 따라 다름.
관련 사료와 기록
- 이동휘 (공훈전자사료관 이달의 독립운동가) (식별번호 81254) — 공훈전자사료관이 이동휘의 공적 요약과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를 기재한 페이지입니다.
- 이동휘 (독립운동인명사전) — 독립운동인명사전이 이동휘의 연도별 활동과 활동 지역을 정리한 항목입니다.
생각해 볼 질문
독립이라는 같은 목표를 두고도 방법과 이념이 달랐을 때, 독립운동 안에서 갈등은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기록을 읽을 때 사실과 평가를 어떻게 구분하면 좋을지도 생각해 봅시다.
참고한 자료
아래 공개 자료를 대조해 작성했습니다. 자료마다 서술이 다른 부분은 ‘자료에 따라 다름’으로 표시했습니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오류제보로 알려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