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한인애국단 본부(안공근 집) 상하이 황푸구 황푸난루 863에서 · 1932-04-26 · Public domain · 출처(Wikimedia Commons)
윤봉길(1908~1932)은 충남 예산에서 농촌계몽 운동을 하다 상하이로 망명해 1932년 홍커우공원 의거를 일으켰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습니다.
- 언제
- 1908
한눈에 보기
윤봉길은 충청남도 예산 출신으로, 공훈전자사료관 목록에는 1908년 출생, 1932년 사망으로 나옵니다. 상세 본문에는 생년월일이 비어 있고 1918년 11세 무렵 기록을 근거로 1908년생으로 추정됩니다. 농촌운동을 하다 중국으로 망명해 의열투쟁에 나섰습니다. 공훈록은 활동 지역으로 충남 예산, 상하이, 일본을 꼽습니다.
생애와 활동
공훈록에 따르면 윤봉길은 1918년 덕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3·1운동 이후 식민교육에 반발해 자퇴하고 한학을 배웠습니다. 1927~1928년에는 구매조합과 독서회, 부흥야학원을 꾸렸고, 1929년에는 월진회를 조직해 농촌계몽 운동을 이어 갔습니다. 1930년 농촌운동의 한계를 느껴 중국으로 망명했고, 1931년 상하이에서 공장 노동과 한인 노동자 단체 활동을 했습니다. 1932년 초 김구를 만나 한인애국단에 입단했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공원의 천장절 기념식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 거류민단장이 사망하고 군·정 인사 여럿이 다쳤습니다. 현장에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일본 오사카와 가나자와에 수감되었다가 12월에 순국했습니다.
활동 지역
충남 예산(출생·학업·농촌운동), 중국 상하이(노동 활동·의거), 일본 오사카·가나자와(수감·순국)입니다.
기록이 말해 주는 것
공훈록에 따르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고, 유해는 1946년 국내로 봉환되어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운동 계열은 의열투쟁입니다. 같은 공훈록 안에서도 순국 일자(12월 9일 또는 19일), 나이(24세 또는 25세), 시라가와 대장의 사망일(5월 24일 또는 26일)이 서로 다르게 적혀 있어 자료에 따라 다릅니다.
관련 사료와 기록
- 윤봉길 공훈록(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식별번호 3732) — 공훈전자사료관이 윤봉길의 농촌운동, 상하이 활동, 1932년 의거와 1962년 대한민국장 추서를 적은 공훈록 상세페이지입니다.
사진 자료

사진: Ericmetro · 2010-10-02 · CC BY-SA 3.0 · 출처(Wikimedia Commons)

사진: carpkazu · 2007-01-05 · CC BY-SA 3.0 · 출처(Wikimedia Commons)

사진: carpkazu · 2007-01-05 · CC BY-SA 3.0 · 출처(Wikimedia Commons)

사진: Ericmetro · 2010-10-02 · CC BY-SA 3.0 · 출처(Wikimedia Commons)

사진: Ericmetro · 2010-10-02 · CC BY-SA 3.0 · 출처(Wikimedia Commons)
생각해 볼 질문
1. 농촌계몽 운동에서 의열투쟁으로 나아간 선택은 그의 활동 기록 속에서 어떻게 이어져 보입니까? 2. 같은 기록 안에서도 날짜가 엇갈릴 때 역사 서술은 어떤 방식으로 표기하는 것이 좋을까요?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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