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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동 — 봉오동 전투를 이끈 대한북로독군부의 지도자

분위기를 표현한 AI 역사 재현 이미지입니다 (사료 아님)

최진동은 만주 왕청현에서 군무도독부(대한북로독군부) 계열 부대를 이끌고 1920년 봉오동 전투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입니다. 1963년 독립장을 받았으나 생몰년과 전투 지휘 범위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설명이 다릅니다.

언제
1882

한눈에 보기

최진동(崔振東)은 함북 온성 출신으로, 공훈전자사료관 목록에는 1882~1945로 올라 있습니다(일부 자료는 출생 1883, 사망 1941 등으로 달리 적어 자료에 따라 다름). 만주 왕청현에서 군무도독부를 이끌었고, 1920년 6월 봉오동 부근 전투를 지휘한 인물로 공훈록에 기록되었습니다.

생애와 활동

일찍이 만주로 건너가 왕청현 대전자에서 순경국장으로 일했습니다. 1919년 3·1운동 뒤 세 형제가 왕청현 춘화향 봉의동에 군무도독부를 설치해 무장 독립군을 훈련시켰고, 그는 재정부장을 거쳐 부장으로 도독부를 지휘했다고 합니다. 1920년 6월 4일 대한독립군을 지휘해 봉오동 부근에서 일본군 남양수비대와 제19사단 부대를 맞아 120여 명을 사살했다고 공훈록은 적습니다. 같은 해 10월에는 김좌진 등과 삼도구에서 연합작전회의를 열어 청산리 전쟁의 협동작전을 논의했고, 12월 밀산에서 열린 대한독립군단 편성 협의에 도독부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이후 자유시로 이동했으나 ‘자유시참변’으로 독립군단이 와해되었다고 기록됩니다. 공훈록은 1924년 9월 동녕경찰서에 체포되었다는 동아일보 보도를 끝으로 행적이 알려지지 않는다고 적고 있습니다.

활동 지역

함북 온성(출신지), 만주 왕청현 일대, 봉오동 부근, 삼도구·청산리 일대, 밀산, 러시아령 자유시, 동녕현이 공훈록에 나타납니다.

기록이 말해 주는 것

공훈전자사료관 기록에 따르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봉오동 전투의 지휘 구도에 대해서는 입장이 갈립니다. 공훈록은 최진동이 대한독립군을 지휘했다고 쓰는 반면, 교과서와 일부 서술은 홍범도를 중심에 두어 왔다는 문제 제기가 언론 기사에서 나옵니다. 이 쟁점은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고, 각 연합부대의 편제와 사료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사망 시기도 목록(1945)과 기사(1941)가 달라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관련 사료와 기록

이 글은 주로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했으며 다른 자료와의 교차 확인을 진행 중입니다. 자료마다 서술이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볼 질문

여러 독립군 부대가 연합한 전투에서 ‘누가 이끌었는가’를 기록하는 일은 왜 어려울까요? 널리 알려진 이름과 덜 알려진 이름 사이의 기억의 차이는 어디에서 생길까요?

참고한 자료

아래 공개 자료를 대조해 작성했습니다. 자료마다 서술이 다른 부분은 ‘자료에 따라 다름’으로 표시했습니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오류제보로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