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Unknown author (credit: i815.or.kr, Independence Hall of Korea) · 1921 · Public domain · 출처(Wikimedia Commons)
홍범도(1868~1943)는 1907년 포수 중심 의병부대를 이끈 뒤 1919년 대한독립군을 창설하고 1920년 봉오동·청산리 일대 전투에 참여한 무장투쟁 지도자입니다.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쳤고, 2021년 유해가 봉환되었습니다.
- 언제
- 1868
한눈에 보기
홍범도는 1868년에 태어나 1943년에 세상을 떠난 독립운동가입니다. 공훈전자사료관은 출생지를 평안남도 평양으로, 독립운동인명사전은 평안남도 양덕으로 적고 있어 출생지는 자료에 따라 다름입니다. 의병 활동으로 시작해 1919년 이후 대한독립군을 이끌며 간도와 연해주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생애와 활동
1907년 일제가 총포급화약류단속법을 공포하자 생계를 위협받던 포수들이 모였고, 홍범도는 함경도 후치령 일대를 근거지로 의병부대를 이끌고 일본군과 싸웠습니다. 이후 연해주로 건너가 1910년 전후 독립군 양성과 군자금 마련에 힘썼습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대한독립군을 편성해 두만강 건너 국내 진입 작전을 벌였습니다.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 참여했고, 같은 해 10월 청산리 일대 전투에도 참전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청산리에서 제1연대장으로 참전했다고 적습니다. 1921년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의 역량이 크게 꺾였습니다. 이후 연해주에서 지내다 1937년 소련의 한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으로 옮겨졌고, 1943년 크즐오르다에서 사망했습니다. 다만 한 사진 설명은 시베리아에서 작고했다고 적어 기록에 차이가 있습니다.
활동 지역
함경도 북청·후치령 일대(의병), 간도와 두만강 접경(독립군 활동), 연해주(망명과 노동회 활동),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강제 이주 후 말년).
기록이 말해 주는 것
공훈전자사료관은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고 2021년 대한민국장으로 서훈되었다고 기록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2021년 8월 유해가 봉환되어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고 적습니다. 봉오동 전과는 한 항목 안에서도 전멸과 대파로 표현이 갈리므로 수치와 표현은 단정하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한편 2023년에는 그의 소련 공산당 가입 경력을 둘러싼 평가 논쟁이 있었으며, 이는 사실 기록과 평가자의 입장을 구분해서 보아야 하는 쟁점입니다.
관련 사료와 기록
- 이달의 독립운동가 홍범도 (공훈전자사료관) (식별번호 10984) — 이 페이지는 홍범도의 생몰년, 대한민국장(2021년, 1962년 대통령장 추서) 서훈, 봉오동·청산리 활동을 공훈 개요로 기록합니다.
- 홍범도 (독립운동인명사전,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 이 페이지는 홍범도의 활동과 출생지에 관한 복수의 설을 함께 소개합니다.
이 글은 주로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했으며 다른 자료와의 교차 확인을 진행 중입니다. 자료마다 서술이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볼 질문
1. 한 사람의 활동 중 어떤 부분을 기준으로 독립운동가를 평가해야 할까요? 2. 같은 전투를 두고 자료마다 표현이 다를 때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판단해야 할까요?
참고한 자료
아래 공개 자료를 대조해 작성했습니다. 자료마다 서술이 다른 부분은 ‘자료에 따라 다름’으로 표시했습니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오류제보로 알려 주세요.
